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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일기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2003.05.28 15:20

'지리산 일기'(30)

조회 수 87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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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월의 사모곡(思母曲)
                        (5월17일)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
쓰린 괴로움을 말로 차마 못하시고
매었던 옷고름 풀고 가슴 내보이더라

까만 젖꼭지는 옛날과 같으오이다
나와 나의 동기 어리던 팔구 남매
따뜻한 품안에 안겨 이 젖 물고 크더이다.'
                       -<李秉岐 / 가람 文選>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朴在森 / 追憶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근로자의 날도, 스승의 날도 있다.
석탄일이 끼어 있고, 성년의 날도 있다.
5월, 신록의 향훈은 얼마나 싱그러운가.

5월17일,
아침산행으로 신어산(神魚山)을 한 바퀴 돌아왔다.
아카시아, 찔레꽃 향기 잔뜩 묻힌 그대로.

토요 휴무(休務)로 텅빈 회사 사무실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봐줘야 할 다른 사람의 일이 있었다.
그 일 때문에 반나절의 휴식을 포기한 것이다.
사무실 의자에 막 앉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지리산 칠불사 아래편이오. 작은 토굴인데...!"
"...?"
"어머니 생각이 어찌나 간절한지 이렇게 전화를 드립니다."
"녜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리산 토굴에서 수도중인 스님이 어머니 생각으로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세상 모든 인연과 등진 중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만은 못 잊어 내내 울고 있답니다."
"...?"
"'사모곡, 석탑과 부도'! 최화수님의 그 글이 불씨를 지핀 거예요."
"...?"

아, 비로소 전화 목소리가 이해가 되었다.
[오용민의 '지리산 커뮤니티'] 사이트의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 산책' 칼럼 제44호(2002년 11월29일), 제45호(2002년 12월9일)에 '어머니 사랑 그리울 때' 1, 2편을 실었다.
연기조사와 같은 큰 스님조차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끊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화엄사 4사자 3층석탑과 연곡사 북부도와 같은 걸출한 작품(국보 제35호, 제54호)을 탄생케 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더욱 간추려 '하동茶文化' 2003년 봄 특집호에 옮겨 실었다.
지리산 토굴 스님이 바로 그 글을 읽었다고 한다.

"저 광복동에서 '차마당' 음악감상실 하던 아무개입니다. 기억하실는지요?"
"기억하다마다! 날마다 들렀었는데!"
포장마차 '양산박'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할 때 그 옆의 '차마당'도 즐겨 찾았다.
'차마당'이라면 부산을 대표하는 광복동에서도 이름난 음악찻집이었다.

"다 버리고, 벗어던지고 지리산에 들어왔어요. 머리 깎고 중이 되어 10년 넘게 오직 저 혼자 작은 토굴에서 수도정진합니다."
"...!"
"인연을 다 끊어버렸는데, 육신이 바람처럼 자유로운데, 하지만 오직 하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은 떼낼 수가 없군요!"
카랑카랑하던 그의 목소리가 금세 추욱 젖어버린다.

"요즘 너무너무 좋아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신록 잎새, 맑은 냇물, 찻잎 따는 여인네들! 모두가 너무너무 좋네요. 너무 좋으니까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사모곡, 석탑과 부도'란 선생님 글이 이 중놈에게 정말이지, '사모곡(思母曲)'을 부르게 하네요."

서산대사가 수도했다는 토굴에서 10수년을 홀로 정진, 속세의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 초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스님, 하지만 어머니만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당연하다.
어머니 앞에 무슨 속세와 산중이 구별되겠는가.

"선생님 글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던 부산 광복동 시절이 되살아났습니다. 포장마차 양산박, 음악찻집 차마당, 그 때는 그 나름대로 좋았었지요."
"...예, 그렇구 말구요."
그 사이 빗물과 바닷바람에 씻겨 영도다리 아래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흘러가버린 80, 90년대의 우화가 비에 젖은 가로등 불빛처럼 눈앞에서 번져난다.

"법명(法名)은 법공(法空, ?)입니다. 이곳 토굴에 꼭 한번 다녀가세요. 눈앞 지리산이 너무 좋아요. 너무 좋다보니 눈물이 나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더욱 간절해지네요."
"예, 한번 찾아가지요."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차마당'을 하던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오르는가 하면, 어머니의 얼굴이 아주 선명하게 나의 시야를 덮쳐누르는 것이었다.
  • ?
    솔메 2003.05.28 16:59
    놀랍습니다!!
    세속에서 그렇듯 살던 사람이 탈속하여 토굴정진하는 것도 놀랍고
    십수년이 지나도 어머님만은 생각이 난다는 깊은 모자인연도 놀랍습니다.
  • ?
    최화수 2003.05.29 10:23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지리산 토굴의 한 스님이 일깨워주더군요. 마치 그러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 ?
    moveon 2003.05.30 22:30
    음~~~놀라운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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